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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갈산동 석불 입상(향토유적 제7호)
갈산동 석불 입상(향토유적 제7호)
  • 소재지 : 갈산동 83번지 미륵사

이천시 일대에 분포하는 다른 석불입상들에 비해 동체가 가는 인상을 주는 이 석불은 이천시 안흥동과 갈산동 경계 지점이 되는 도로변 10m쯤 떨어져 현재의 미륵사 대웅전 올라가는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두상과 동체(123×73×52cm) 및 허리 아래 부분(188×73×52cm)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0년경 보수·복원해 놓았다.

머리는 소발로 높이 솟았는데 마치 관모를 쓴 듯한 모습이다. 상호는 약간 길고 네모난 형태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둥근 눈썹에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간 눈을 하고 있다. 코는 깨져 시멘트로 보수해 놓았으며 일자로 다문 입은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조각해 놓았다.

귀는 긴 편인데 귀의 폭이 특히 넓어 보인다. 목은 짧고 삼도가 있으나 마모되어 흐릿하게 보인다. 법의는 통견이며 옷주름이 발등 위까지 흐르고 있다. 오른발은 5cm 깊이의 홈을 파고 발등을 표현하였으며, 왼발은 현재 파손된 상태이다. 허리 부분에는 결대가 있는데, 왼손이 이 결대를 잡고 있다. 다리 사이에는 발목까지 띠가 늘어져 있다.
수인은 오른손은 엄지와 장지를 구부려 거의 맞닿게 한 후 손등을 가슴에 닿게 하였다. 왼손은 손을 편 후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게 하여 배 부분에 대고 있는데 손 밑에는 매듭 모양의 결대가 표현되어 있다. 불상의 앞에는 한 변이 57cm, 높이 39cm인 정방형 탑신석이 상석으로 놓여져 있고, 불상의 주변에는 높이 166cm의 돌기둥이 네 개가 서 있다. 돌기둥 사이에는 장대석과 돌을 이용하여 삼면을 막아 놓았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측치는 총고 414cm, 두고 103cm, 신고는 311cm이다.

애련정(愛蓮亭, 향토유적 제15호)
애련정(愛蓮亭, 향토유적 제15호)
  • 소재지 : 안흥동 404

우리나라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경치가 수려한 곳에는 대개 아담한 정자가 자리잡고 있다. 정자는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기는 하지만 자연 경계 속에서 결코 눈에 거슬리는 법이 없고, 그 속에 들어앉아 있노라면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동화되고 만다. 산 좋고 물 좋은 경관을 배경으로 하는 정자에는 자연을 아끼고 늘 가까이 하려했던 우리 조상들의 마음씨가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옛 문헌에 이천읍내에는 애련정이란 이름의 정자가 있었으니, 중종과 정조 등 임금님들까지 이 정자를 찾아 경치를 감상한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유명했던 고장의 명소였다.

임원준(任元濬)이 지은 기문을 보면 원래 객사 남쪽에는 정자가 있었으나, 작고 낮아서 볼품이 없는 데다가 부사가 8∼9명이 바뀌도록 수리를 하지 않아서 기울어 가던 차에, 부사 이세보(李世珤)가 부임해 온 지 2년만에 새로 정자를 건립했다고 한다. 따라서 애련정의 건립 시기는 이세보가 이천부사로 임명된 성종조 초인 1470년대로 추정되고 있다.

애련정의 위치가 어디였는가에 대해서 문헌에는 '재별관동정(在別館東庭)'이라고 하여 별관 동쪽에 있다고만 나온다. 그런데 임원준이「애련정기」에 기록하기를 정자 앞에 습지가 있어 방형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기에, '정자에서 보면 동남간으로 효양산 제 봉우리가 책상 앞에 벌려 있고, 가까이는 아름다운 나무숲이 물위에 비쳐서 경치가 서로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 뒤로 중종조에 가서 이천행궁이 건립되고 나서는 행궁 남쪽변에 애련정이 있다고 했으니, 별관과 행궁 사이의 동남쪽으로, 앞에는 연못을 끼고 효양산이 잘 보이는 위치에 정자가 있었던 것이다. 정확한 위치는 고증할 수 없으나 대략 지금의 안흥지에서 구 이천우체국 방향의 어느 지점이었을 것이다.

애련정은 매우 빼어난 경관을 자랑했으니 이는 당대의 일류로 손꼽히는 시인묵객들이 다투어 애련정의 경치를 칭송하는 글을 남긴 사실에서 증명되고 잇다. 우선'애련'이란 정자 이름을 지은이가 당시 영의정으로 있던 신숙주(申叔舟)였고, 기문을 쓴 임원준 또한 성종조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시문으로는 성종의 형으로 뛰어난 시인이었던 월산대군 이정(李 )을 비롯해서, 서거정(徐居正)·조위(曺偉)·강경서(姜景敍)·김진상(金鎭商)의 글이 남아 있다. 김안국이 지은「애련루기」도『모재집』속에 들어 있다.

한편 중종·숙종·영조·정조 네 임금이 여주 능행길에 올랐다가 이천행궁에 유숙하면서 애련정에 올라 경치를 감상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중종23년(1544)10월, 임금이 능행을 끝내고 이천행궁에 머물 때, 애련정에서 노인잔치를 베풀고 글 제목을 내려 시를 짓도록 했다고 한다. 『정조실록』에는 임금이 행궁에서 애련정을 바라보면서 당시 경기관찰사였던 정창성(鄭昌聖)과 죽 받은 대화가 나온다.
그런데 이 군신간의 대화내용을 보면 정자가 세워진지 이미 300여 년이란 세월이 지난 뒤인데도, 정조가 애련정에 대한 소문을 이미 잘 알고 있고, 월산대군이 지은 애련정시의 내용까지도 기억하고 잇었다는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고장의 명물이었던 애련정이 언제 없어지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정조조인 18세기 후반까지도 뚜렷하게 건재했던 사실이 입증되기 때문에, 이 시기보다도 한참 세월이 지난 뒤인 한말 혼란기로 추정되고 있다. 정자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기록도 현재까지는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애련정기」에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고, 그리 사치하지도 검소하지도 않다'고 했기에, 유별난 형태는 아닌 수수하고 일반적인 모습의 정자였으리라고 추정 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천시가 안흥지를 시민공원으로 개발하면서 애련정 복원계획을 추진하여, 안흥지 복판에 있는 인공섬 위에 새 정자를 건립하고 1999년 6월 11일 준공식을 가졌다. 목조로 된 측면 2칸, 전면 3칸의 6칸 짜리 팔작지붕 형태이며, 향토유전 15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현판 글씨는 이천출신 농학자 류달영이 썼다.

애련정시
조위
정자 짓고 연못 파서 연을 심었으니
사람마다 당시 태수를 현자라 하네
애간장 태우는 미녀 같아서
단장한 그 모습이 어여쁘구나
염계의 애련설을 다시 외우며
자주 꿈결 속 태을선에서 노니네
푸른 잎을 따서 술잔 만들어
취하도록 마시고 쓰러져 자고 싶어라

이천온천
이천온천
  • 소재지 : 안흥동 409

이천시는 동서로 27km, 남북이 약 36km로서 남북으로 긴 표주박 모양을 보여 흡사 분지를 연상케 한다. 이천 온천은 이천시 안흥동 409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역사는 약 150년 전부터 온천뱀이라 불리어 오다가 약수로 발견되기는 지금부터 약 100년 전이다. 이곳 근처에서 농사를 짓던 한 농부가 사계절 더운 샘물이 나오는 것을 이상히 여기고 이 물에 세수를 하였더니 눈병이 완치되었다고 한다. 이 후로 약효가 전해져서 많은 피부병 환자들이 찾아와 효험을 보게 되어 유명해 졌다고 한다.

이천 온천의 지형 및 지질은 노년기의 지형으로서 지질은 백악가불국사 통에 속하는 흑훈모화강암과 분암 및 제4기 측석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온은 28 - 31.5 이며 심도는 3-46.2m이다.

수질은 KCℓ:0.0174㎎, NaCℓ:0.0592mg, Na:0.0052㎎, Aℓ₂(SO₄):0.0063㎎, Fe(HCO)₃: 0.0029㎎, CaSO₄: 0.0415㎎, Mg(HCO)₃: 0.00645㎎, H₂SO₃: 0.0291㎎, CO₂: 0.05319㎎등이 함유되어 있어 만성습진, 관능성 신경병, 부인 만성제병 등에 효과가 있다.

이천온천의 최초 개발은 1935년 수여철도 부설 후 추창엽(秋昌燁)이 약수목욕이라는 목욕탕을 최초로 경영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경영하다가, 8.15광복 후 경영난에 시달리던 중 마침내 한국전쟁으로 폐쇄되었다. 이후 이천 온천 개발은 1959년도에 개발에 착수하여, 여관과 목욕탕 설비를 갖추어 민간인에 의해 경영되어 오면서 개발 단계에 들어간다.

본격적인 관광지로서의 온천 개발은 1983년 온천 관광 호텔 설봉이 이천에 최초의 관광호텔을 건립하면서 온천 개발을 시작하였고, 이후 1991년 (주)미원에서 경기도 최초의 165개의 객실과 각종 레저시설을 갖춘 특급 호텔을 설립하여 영업하면서 이천 온천의 중흥기를 맞이하여 현재 수도권 유일의 온천 관광지로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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